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리비아 내전 (문단 편집) === 시르테 공방전 === 시르테가 마지막 결전지로 떠오르면서 완전히 승기를 잡은 시민군은 카다피군에게 항복을 권고하면서 협상 시한을 제시했다. 이와중에 카다피의 아내 사피아 파르카시와 딸 아이샤, 두 아들 무하마드와 한니발은 [[알제리]]로 도피했다. 반군 측에선 당연히 반발했고 카다피 가족에게 피신처 제공한 건 "적대행위"라며 알제리 측에 송환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http://media.daum.net/foreign/view.html?cateid=1045&newsid=20110830090942874&p=yonhap|기사 참고]] 근데 이 기사에 의하면 내전 기간에 알제리가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s-6.2|카다피 측에 용병 지원]]도 했다고 한다.] 시르테는 카다피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라 무혈입성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카다피는 리비아 시간으로 2011년 9월 4일 반군이 무장을 해제하고 자신의 점령지인 바니 왈리드에 오라는 조건을 내걸며 항복을 거부했다. 결국 시민군과 나토 연합군은 카다피의 마지막 거점 시르테를 향해 총공세에 나섰다. 2011년 9월 16일(현지 시각) 유엔 총회에서는 표결을 통해 시민군 대표인 과도국가위원회(National Transitional Council)가 리비아의 유엔 회원국 지위를 넘겨받는 것을 승인했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5268645|관련 기사]]][* 114개국이 찬성하고 17개국이 반대, 15개국이 기권했는데 반대한 17개국과 기권한 15개국이 어디인지는 [[http://www.un.org/News/Press/docs/2011/ga11137.doc.htm|여기의 ANNEX II에서 볼 수 있다.]] ~~왠지 눈에 띄는 국가들 이름을 보면서 반대할 만한 나라가 반대했고 기권할 만한 나라가 기권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2011년 3월부터 [date]까지 98개의 [[국제연합|UN]] 회원국이(과반수) NTC를 리비아의 합법 정부로 공식 인정했다.[* [[http://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recognition_of_the_National_Transitional_Council|영어 위키백과의 관련 문서]] 참조] 시르테는 치열한 교전 끝에 시민군에게 함락되었고 2011년 10월 20일 도망치던 카다피는 나토군 무인기의 공습을 받고 하수도에 피신했다가 시민군에게 붙잡혀 끌려나와 이동 중 머리와 복부에 총상을 입고 숨졌다. 그리고 같은 날 국가과도위원회는 카다피의 넷째 아들 무타심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4147369|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시민군은 2011년 10월 23일(현지 시각. 한국 시각으로 10월 23일 오후 11시~24일 자정 무렵) 공식적으로 리비아가 해방되었음을 선언해 내전 종식을 발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